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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현당 옛터] 시대적 배경
작성자 : 관리자
등록일 : 04-02-24 10:12
조회 : 657
2. 희현당(希顯當) 옛 터


1) 시대적 배경


레이놀드 선교사의 사랑에서 김창국이라는 한 소년을 대상으로 신교육을 시작한 1900년부터 한일합방이 이루어진 1910년까지 우리나라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은 급변하고 있었다. 정치적으로 일본은 우리나라를 서서히 식민지화하고 있었으며, 이에 대하여 많은 선각자들이 선진적인 개화문물을 받아들이고, 교육을 통하여 나라를 건져보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개화기에 세워진 대부분의 관립학교에서는 그 설립목적을 실학의 진흥에 두고 있었으며, 반면에 민중교육 운동가들에 의해서 세워진 사립학교는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려는 개화사상과 민족주의 정신을 강조하고 있었다. 한편 선교계 학교에서는 기독교 정신과 민주주의 정신의 보급에 그 설립이념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한 1905년 이후의 관립학교들은 일제의 관료주의를 뒷받침하고 동화정책을 실천하려는 방향으로 그 교육목표를 전환시켜 나갔으며, 이에 선교계 학교를 포함한 사립학교에서는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새 지식을 계발하여 국권을 찾고자 하는 교육구국(敎育救國)의 이념을 더욱 분명히 했다. 사립학교 교사들은 독립운동 지사(志士)였으며, 교육자로서의 신념과 함께 애국자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있었다.

교육내용에 있어서는 관립학교에서는 정부에서 규정한 교과내용과 교수요목을 따르고 있었다. 관립학교의 교과목에서는 국어와 국사, 그리고 수신(修身)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였는데 이러한 경향은 사립학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사립학교 중 선교계 학교는 성경을 필수 과목으로 가르치고 있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한편 학부(學部)에서는 관립학교 교육에 필요한 각종 교과서들을 편찬해 나갔다. 사립학교의 경우 학부에서 간행한 교과서들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학부의 교과서가 간행되기 이전부터 스스로 교과서를 편찬하여 사용했다. 특히 사립학교에서는 『미국 독립사』, 『파란 말년전사(波瀾末年戰史)』, 『월남 망국사』등을 부교재로 사용하여 구국교육(救國敎育)에 전력하고 있었다. 한편 1905년 이후 애국계몽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자 각종 학회에서는 교과서를 간행하여 애국계몽사상을 고취해 나갔다. 이 때문에 일본 통감부는 교과서를 비롯한 일반 출판물에 대한 검열을 강화했다.

구국교육으로서의 민중교육운동은 을사조약(1905) 이후 일본의 탄압에 직면하게 되었다. 일본은 1904년부터 학부(學部)에 일본인 참여관을 파견하여 반일적인 교육을 억압 통제하는 한편 일본의 보호정책을 합리화할 수 있는 친일적 교과서의 편찬을 위해 특별 위원회를 설치하고 교과서를 개편해 나갔다. 1908년 일본은 교과용 도서의 검열을 강화하고 모든 교육기관에서는 반드시 검인정 교과서를 쓰도록 강요하였다. 검인정 교과서의 제도로 인하여 민족교육은 점차 말살되어가고 있었으며, 교육의 자율성은 박탈되어 갔던 것이다.

한편 일본은 민중교육 운동을 철저히 탄압하기 위하여 1908년 “사립학교령”을 반포하여 그 시설과 규모를 엄격히 규정함으로써 많은 사립학교를 강제로 폐교시켰다. 이에 앞서 일본은 1906년 “보통학교령”을 반포해서 관공립 6년제 소학교를 4년제의 보통학교로 개편하여 교육의 질을 저하시킴으로써 조선인에 대한 우민화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통감부는 조선인들의 인문교육이나 고등교육의 기회를 가능한 한 제한하려 했으며, 그들의 요구에 응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일본어 교육의 기초적 실업교육만을 시행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민중교육 운동은 지속되고 있었으며, 교육구국의 이념은 면면히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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